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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즐거움/조금 긴 소개

정한아 장편소설 『달의 바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by LoveWish 2008. 2. 6.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시작문단)

감기랑 같이 산 책, 『달의 바다』
제 12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다.

신문에서 책 소개를 읽고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신문 기사를 읽지 않고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을 했다.
줄거리 때문에 스포일러 당한 기분이었다. 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좋았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주인공들은 기분이 좋을 때 고개나 발을 '까딱까딱'한다.
나도 이 책 덕분에 당분간 까딱까딱 거리며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읽었던 책 두 번 세 번 보는거 정말 못하는데, 여러번 책장을 넘기게 됐다.
벼운 무게와 너무 예쁜 디자인도 한 몫하긴 했지만, 만지작 거리고 있음 즐거워지는 책이다.

앞으로 나올 정한아씨의 이야기들도 너무 기대된다.
세 달 동안 칩거하면 나도 글 쓸 수 있나? ㅋㅋㅋㅋㅋㅋㅋㅋ 미안.

  아, 그래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밤하늘의 저 먼 데를 쳐다보면 아름답고 둥근 행성 한구석에서 엄마의 달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주셨잖아요?
(끝문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신문에서 줄거리 스포일러를 당했다면,

아래 글은 내가 느낀 멋진 문장 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르겠다.
책부터 읽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 여행

      저는 기념품을 챙겨다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불안하고 또 자유로워졌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대치상황에 있는 동안 나는 말없이 여행 준비를 해나갔다. 나는 내가 처해 있는 유예상태를 애써 모르는척하려고 했다. 시계를 보지도 않고, 날짜를 세지도 않았으며, 당장의 일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뜬금없이 중간에 펼쳐진 책처럼 어리둥절해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잠을 잘 땐 매트에 누워서 허리에 벨트를 채워야 했어요.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벨트는 조금 느슨하게 맸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바닥으로부터 미세하게 몸이 더오르는 것이 느껴졌어요. 처음엔 도무지 그런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죠. 생각해보면 저는 언제나 주변으로부터 잡아당겨지는 힘으로 살아왔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저를 끌어당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둥둥 떠오른 저는 몸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쓰고 있었어요.



  •   저는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지구가 알사탕만하게 보이는 곳으로, 그러니까 제 잘못이나 슬픔도 알사탕의 티끌로 보이는 곳으로요. 엄마, 저는 그 모든 순간을 즐겼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이걸 위해서 희생했던 것들, 제가 저지른 실수와 오류들 말이에요. 사는 게 선택의 문제라면 저는 제 손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싶거든요.

      "어쩌면 그것 자체가 복수일 수도 있어. 아무렇지 않은 척 더 잘 살아내는 거. 하지만 끝은 있을걸. 결국 견뎌내는 것뿐이니까. 그 녀석 언젠가는 두 배로 무너지고 말 거야."

      그건 인간만이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기 때문일 거예요. 내가 선택한 대로 사는 인생이죠.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의 살밍 무엇 하나 동물보다 나은 것이 있겠어요?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 일로 돈을 벌어서 밥도 사먹고,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따뜻한 옷을 사입을 수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한 양 첸 할아버지를 향하 끓어오르는 질투심과 함께 문득 '나는 한 번도 기사를 쓰는 일을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시험에 붙어야 한다고,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누군가 어리석을 내 머리를 톡, 톡, 치는 것 같았다.

      "왜 할머니한테 가짜 편지를 쓴 거야?"
      고모는 미소를 지었다.
      "즐거움을 위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느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고모는 부드럽게 웃었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걱,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
      "그래서?"
      "자유지."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저 바라볼 뿐이죠. 하지만 이 세계가 오해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떠올려보면 분명히 신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분을 향해서 큰 소리로 노래라도 불러드리고 싶어요. 지구를 벗어나면 우주, 또 우주를 벗어나면 무엇이 있을지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거든요.

    달의 바다 - 10점
    정한아 지음/문학동네

    2007년 8월 1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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