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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즐거움/조금 긴 소개

김현진, 『그래도 언니는 간다』. 나도 간다.

by LoveWish 2009. 7. 6.



내 스무살의 생일 날 오빠가 김현진의 『불량소녀 백서』를 선물해줬었지.
 
어쩌면 나는 오빠를 통해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눈 뜬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오빠는 내 앞에서 비판 당하는 입장을 면치 못한다. '어디가서 페미니스트라고 꼴깝 떨고 다니지 마라, 니가 뭘 아냐.'라는 내 한 마디에 오빠는 닥쳤다. 그래도 자기는 '마초'는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다니더라. 그러고는 '휴머니스트'라고 한다던가?

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휴머니스트예요. (p.17)

김현진은 이야기 한다. '그래도 언니는 간다'의 두 번째 이야기, "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휴머니스트예요"에서 많은 여자들이 "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휴머니스트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절 미워하지 마세요. 전 당신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전 여자이길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요. 전 여성성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라고 말이다.

하긴 나도 어디가서 '나 페미니스트예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 여성주의자예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내 20대 초반의 정체성이 어떠했건, 난 지금 그냥 무난하게 살고 싶어하는 예뻐보이고 싶은 여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이 무난하게 살지 못한다는 것인가? 왜? 내 여성관에 영향을 준, 진보적인 학문을 공부하는 오빠마저도, 극?여성주의 운동하는 사람들은 부담스럽다고 해? 왜? 왜? 왜? 하긴, 내 주변의 여자들마저도,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평가하더라. 왜? 왜? 왜! 왜! 왜!!

언니들이 사주는 술? (p.76)

김현진은 술을, 개라는 생물이 실로 고귀해 보일 만큼 극성맞은 술버릇 때문에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년들은 형님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어른이 되지만, 소녀들은 혼자서 술을 마시며 어른이 되어 혼자서 술을 마시는 여자로 자라난다며 그녀들에게 술을 사주는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오빠들은 그녀들에게 술을 사주지만 오빠가 사준 술은 결코 공짜가 아니라고 한다. 결국 소녀들은 홀로 술을 마시게 된다고. 그러면서 언니들이 소녀들에게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소녀들이 자라나서 다른 소녀들에게 밥 사주고 술 사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단다. 나에게는 밥사주고 술사주는 언니들이 있다. 내가 그녀들을 알게 된 건 인생의 행운이랄까? 정말 소중한 존재들이다. 나도 돈을 벌어, 딴 건 몰라도 술 정도는 사줄 수 있는 '언니'가 되고싶다. 있다, '술 사주는 언니들'.

'불량소녀 백서'에서도 느꼈지만 김현진처럼 솔직하게 까발리는, 막말하는 여자는 흔하지 않다.

하긴 나도, 김현진의 글을 공감하며 읽으면서도, '당신이 아무리 뻘짓을 했다해도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 책으로 내 가면서 잘 살고 있지 않느냐' 하는 반감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니 그 솔직하게 막말하는게 얼마나 쉽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소심하기 그지없는 내 정치적 성향마저 크게 드러내놓지 않고 사는데 말이다.

운동권의 'ㅇ'자도 모르던 김현진이 단식 투쟁까지 하게 된 이유? (p. 156)

4부에 관련 이야기들이 계속 나오지만, 3부 '미래에서 온 질문'이라는 글에서 말한다. '내가 굶고 싶어서 굶는다, 어쩔래? 이 새끼들아, 니들이 밥맛 떨어지게 굴잖아.' 사실, 비정규직 복직투쟁 같은 것에 아무리 동조를 해도 선뜻 그 앞에 나가 함께 굶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 농성장과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과 화장한 얼굴로 말이다.

김현진이 멋진 이유?

'불량소녀'들이 남자와 자는 것은 문제될 것 없으되, 나쁜 남자와 자지 말라고 쿨하게 말하는 김현진. 그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구두 좋아하고 옷 좋아하는 보통의 여자와 다를 것이 없으되, 분노할 것에 분노할 줄 알고 그에따라 행동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다. 자신도 말한다, 자기는 아는 것 없어 무슨 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그러나 '내기분주의자'라고 말이다. 그 기분이 이 세상에 화가 나서 쓴 글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그녀는 꽤 멋진 사람이다.



책 읽고 바로 생각나는대로 막 적어나간 글을 바로 발행하지 못하고 비공개로 저장해뒀었다. 좀 거친 면이 없지 않지만, 김현진 글 읽고나면 어느 정도 같이 흥분해서 적어줄 수 있다! 까질하게~ so 까칠!ㅋㅋㅋ 나도 불량소녀니까요. 그래서 그냥 발행해본다. 이 땅의 언냐들, 너무 숨 죽이고만 살지 말자. 화내는 방법 모르겠을 때, '불량소녀 백서'나 '그래도 언니는 간다' 정도 읽어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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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언니는 간다 - 10점
김현진/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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