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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즐거움/오려두는 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by LoveWish 2008. 2. 5.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클릭★

한국일보에 2002년 3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연재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기획.


이런걸 이제서야 발견하다니!
(전경린의 소설, 「엄마의 집」을 읽고 나서 그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찾았다.)

내가 좀 더 알고 싶어하는 문인들이,
자기가 왜 문학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 아니던가?

김연수, 전경린, 이시영, 공지영, 박범신, 김혜순 …… 조정래까지...
아직 전경린편 밖에 안 읽었지만 벌써부터 설렌다. 호호호~

전경린 편 전문을 인용해본다.
나도 언젠간 글을 쓰며 살고싶다.


소설가 전경린

서른 세살…문득 삶을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적막한 풍경 한없이 보던…일찌감치 삶에 질렸던 아이

어떤 부류의 사람은 삶 자체로부터 욕구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불행뿐 아니라 행복의 구조조차 불편해 하고, 아무 것에도 탐닉하지 못하고, 습관이 없고, 질서의 우아함을 모르고, 긴 무기력과 단말마적 열정의 궤적을 순환하며 타자라는 존재의 중량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늘 문제적이다. 왜 삶에 그처럼 부적격한지 모르지만, 다른 체온을 가지고 타고 났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는 한번의 경험으로 직관하며 반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바람직한 삶보다는 운명적인 삶이 주어진 것이다.

나는 소읍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행동이 없는 내성적이고 적막한 아이였다. 혈류의 속도와 관계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도 있지만, 어린 날의 하루는 어른에 비해 무척 길다. 그 긴긴 하루 동안 소읍의 어른들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안에서 외출하고, 가족과 이웃들과 살을 비벼대며 청소하고 빨래하고 먹을 것을 마련하여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을 자고 했는데, 그 일이 다음날에도 그 다음해에도 10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되는 것이었다.

나의 첫 의식은 불행히도, 삶은 거대한 낭비라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삶은 바람에 쫓겨 빙글빙글 도는 풍향계만큼이나 무의미했다. 나는 일찌감치 삶에 질려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햇빛이 가득한 허공과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는 길의 끝과 피고 지는 꽃들을 한도 없이 쳐다보는 아이였다. 엄마는 그런 넋이 빠진 듯한 아이를 몹시 싫어해서 쫓겨 다녔다.

나는 좀 늦되었던 것 같다. 어른들의 말귀를 잘 못 알아들었고, 단체 생활을 못했으며, 지식과 상식, 이 세계의 확실성을 믿지 못했다. 세계는 설정이고, 허구이고, 허상이며 타자들은 무수한 거울조각에 비친 나의 의미 없는 반향이라는, 생 이전의 본질 속에서 낮에도 잠들어 있었다.

전생에 무엇이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틀림없이 허공이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 전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적막이었다. 어떤 자리에서, 언제 가장 행복한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어떤 이는 여행 중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며 아침 식사를 할 때라고 하고 어떤 이는 열심히 일할 때라고 하고 어떤 이는 밤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라고 했는데, 나는 인적 없는 풍경을 오래 바라볼 때라고 말했다. 산 속에서나, 안개 낀 강변에서나, 혹은 바닷가 길을 차를 타고 가면서나, 배를 타고 있을 때나…. 두 눈 속에 적막한 풍경이 가득 차고, 그 풍경에 내 넋을 주어버릴 때.

이런 성향 때문에 나는 많은 시간을 홀로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책을 남달리 많이 읽었다거나, 노트에 글을 썼다거나,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공백 속에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건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단지 자기 방에 틀어박히기를 좋아하고, 조금 더 침울하고 예민해 보일 뿐 지극히 평범했던 한 여자가 서른 세 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것은 스스로에게까지 숨겨온 끔찍한 비밀을 누설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은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결심이었다. 자신을 갈기갈기 나누어 삶 속에 섞여 무던하게 살아보려 했던, 성년기 이후의 처참한 노력을 단념하고, 삶의 표층 아래로 망명을 했던 것이다.

그때 작가에 대한 나의 기대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첫째, 몇 시간이든, 몇 날이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나의 방, 나의 집에 틀어박힐 명분을 가질 수 있다.

둘째,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경제력을 획득할 수 있다.

셋째, 혼의 조각들처럼 어지럽게 나타났다가 사라져 가는 생각의 실마리들, 오린 듯 선명한 장면들, 뒤죽박죽 떠오르는 문장들, 몽상과 환상에 질서를 부여해 의미 있는 형태와 안식을 주고 싶다.

넷째, 현실을 벗어나 버린 듯한, 미쳐있는 시간과 책 읽을 시간에 대한 직업적인 권리를 확보하고 싶다.

다섯째, 누군가에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한 그루처럼, 나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고 싶다.

여섯째, 모든 성가신 의무를 글쓰기로 대신하고, 그로써 삶에 대한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

나의 시작은 이게 다였다. 훌륭한 작가가 되려 한 게 아니라, 나와 내 삶을 일치시켜 자신을 구하려 했던 것이다. 만약 미혼이었다면, 이 조용하고 작고 가난한 기대들은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아이를 낳은 엄마였고 한 남자의 아내였다. 그러니 이 기대는 몹시 이袖岵隔?도피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여자란,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 내가 후회하는 것은 가까운 이들이 겪었을 외로움과 힘겨움보다는 작가로서 내가 스스로의 조용한 기대에조차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더 철저하게 그렇게 되는 편이 나았다.

우리는 누구나 이 삶을 초월해서 살 수 있는 통로를 구하려 한다. 신이든, 사랑이든, 이타적 헌신이든, 업무를 업적으로까지 발전시키는 열정이든, 그것은 삶을 넘어가기 위해 의지하는 저마다의 방법이다. 우리는 땅바닥에서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생존이라는 목을 죄는 짧은 사슬을 잊을 수 있는 저마다의 초월이 필요하다. 내게 그것은 글쓰기였다. 그 외에 삶은 저절로 되는 것이어야 했다. 그토록 자연스럽고 그처럼 쉽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글을 쓰면서 나이 드는 동안 나도 이제 삶의 지엄함과 사람의 다정함을 알게 되었다. 이 질기고 무상한 삶은 욕구로 사는 것도 아니고 왜, 무엇을 위해서, 같은 질문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생명 가진 것들의 긍정적 체온과 소망과 인내로 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소박하고 외지고 따스하고 그립고 힘겹다. 그리고 이 구태의연한 단어들처럼, 수선이 필요할 만큼 낡고 퇴색하고 닳아 빠지고 지친 것이다. 그래서 군데군데 못박힌 가슴처럼 숨쉬는 것조차 저릿하게 아파 온다.

삶의 한가운데서 이제 피하고 싶었던 불편한 질문을 해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피로와 숨쉬는 아픔을 느끼며 대답한다. 그것은, 나의 일이다.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객관화된 지점에 문학에 관한 새로운 고통과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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