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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과 칸나꽃 칼과 칸나꽃 최정례 너는 칼자루를 쥐었고 그래 나는 재빨리 목을 들이민다 칼자루를 쥔 것은 내가 아닌 너이므로 휘두르는 칼날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닌 나이므로 너와 나 이야기의 끝장에 마침 막 지고 있는 칸나꽃이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슬퍼하자 실컷 첫날은 슬프고 둘째 날도 슬프고 셋째 날 또한 슬플 테지만 슬픔의 첫째 날이 슬픔의 둘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둘째 날이 슬픔의 셋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셋째 날이 다시 쓰러지는 걸 슬픔의 넷째 날이 되어 바라보자 상갓집의 국숫발은 불어터지고 화투장의 사슴은 뛴다 울던 사람은 통곡을 멈추고 국숫발을 빤다 오래 가지 못하는 슬픔을 위하여 끝까지 쓰러지자 슬픔이 칸나꽃에게로 가 무너지는 걸 바라보자 저항할 수 없는 칼자루 앞에 그냥 몸이 맡겨.. 2008. 2. 23.
[시] 하늘과 땅 하늘과 땅 산도르 마라이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불멸의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내 영혼 안에는 인도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 한번은 까페에서 술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 나는 몇 시간씩 물을 응시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뒤좇을 수 있지만 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나는 숲 가에 서서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에 의혹의 눈으로 꼭 조건을 붙인다. 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임에 휩쓸려 내 인생.. 2008. 2. 20.
[시] 빛, 바다에 대한 그리움... 빛 이시영 내마음 초록 숲이 굽이치며 달려가는 곳 거기에 바다는 있어라 뜀뛰는 가슴 너는 있어라 이 시가 아마, 광화문 교보문고에 한동안 걸려 있던 시였을거다. 그 때 이 시가 너무 좋아서 열심히 찾아서 이시영의 시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시영 시집을 한 권 사들고는 무척 기뻐 했었다. 그러고는 아래와 같은 글을 써 놓고, 고향에 갔다. 바다보러. (2007년 여름) 사실 바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낭만적인 건 아니다. 그냥 바다가 없는 곳에서 바다를 그리워 하는 그 마음이 참 좋다. 바다가 해주는 무언의 위로, 넓음과 푸르름, 그리고 파도 소리가 그저 좋다. 그래서 바다에 간다. 몇 달 동안 그렇게 그리워 하다가 바다에 간다. 바다에 가면 막상 그리던 모습이 아니거나 혼자인 외로움에 오래 머무르지도.. 2008.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