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rdiary.tistory.com/79 여기에도 썼지만, 논문을 두고 책을 읽으면 괜히 혼자 마음이 죄스러워서 소설을 멀리하고 지내다가, 한 번 읽기 시작했더니 멈출 수 없어서...(-_ -?) 몇 권 마셨다. 하나같이 재밌게 읽었지만, 한 권 한 권 포스팅 할 엄두는 나지 않고 '') 기록용으로 사진만 살짝 올려둔다.
1. 하재영 장편소설 『스캔들』
이 책이 시작이었다. 얇고 재밌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재밌다며, 이래서 소설을 좀 읽어줘야 한다며, 다 읽자마자 다음 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시작!
p. 52 눈앞이 새까매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화하던 경험. 질투와 배신감에 입술이 떨리던 경험. 지금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연애에는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고, 덜 사랑하는 자가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때 내게 덜 사랑한다는 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고백이었다. 절망스러웠지만 나는 화내지 않았다. 화낼 수 없었다. 절망은 분노와 멀다. 절망은 슬픔과 가깝다. 나는 슬펐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p. 53 레밍과 보낸 시간은 행복했지만 좋지 않았다. 첫사랑과 보낸 시간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좋았다. 그 모순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게 사랑이란, 결핍과 두려움의 상태를 뜻했다. 그런 면에서 첫사랑은 내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누가 그 사람만큼 나를 결핍감에 허덕이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할까. 결핍감이 커질수록,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나는 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혹은 사랑한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결핍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p. 57 레밍은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걸까.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고 싶었다. 진심이 아니라도. 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 관계는 족쇄와 억압이 될 터였다. '사랑'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이.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차가운 물줄기를 맞으며 첫사랑을 생각했다. 결핍과 두려움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나는 그 믿음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불륜은 결핍과 두려움이 고도로 응축된 관계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어울리는 연애 방식이다.
2. 최진영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하앍. 확실이 이 소설은 문제작이었다. ㅜ_ ㅜ 낯선 문체에서 비롯되는 가파른 호흡에 눈돌릴 틈도 없이 이야기에 빠져 들어 책을 읽어나가야만 했다! 여자 아이가 엄마를 찾아다니는(이라고 요약해버리기엔 너무 부족하지만) 이야기인데, '2부 태백식당 할머니' 편에서는, 할머니 생각이 자꾸만 나서 눈물 테러까지 당하고. 헝헝. 한 권의 소설이 나라는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 또 한 번 생각해보게 된 책. 지금 저 표지를 사진 찍어놓고 다시 쳐다봐도 마음이 아리다.
p. 75 많이묵고 더묵고 냉기지 마라
p. 79 나는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문제를 휙휙 풀어댔다. 할머니는 꾸부정하게 앉아 내가 하는 모양을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활짝 웃었다. 그때 처음 봤다. 할머니의 웃는 모습. 할머니가 웃으니까 나도 웃음이 날 뻔했다. 그래도 꾹 참았다. 하지만 웃음은 눈물과 달리 참는다고 쉽게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참고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주 조금 웃었다. 내가 웃는 걸 보고 할머니가 또 웃었다. 봄바람이 창문을 와르르 훑으며 지나갔다.
p. 194 밤하늘을 한없이 쳐다보고 있자니 더 많은 별이 보였다. 해에겐 해라는 이름이 있고 달에겐 달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반짝이는 저 많은 별들은 다 그냥 별이니, 어쩜 나와 비슷하다. 저마다 이름이 있고 나이가 있는데 내겐 그런 것이 없으니. 나는 반짝이는 별들 중 가장 밝은 별 하나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서 여러 가지 이름을 생각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냥 별이라는 이름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저 별은 그냥 별로 두고, 다른 별에게 모조리 이름을 붙여주기로. 그럼 저 별만 특별해질 거다. 세상 사람에겐 모두 이름이 있는데 내게만 이름이 없는 것처럼. 나는 이상한게 아니라 특별한 거다. 나는 내 맘에 드는 별을 제외한 다른 별들에게 오만 가지 이름을 다 붙이기로 했다.
3. 이우혁 장편소설 『바이퍼케이션』 1, 2, 3.
ㅋㅋㅋ. 아주 오랜만이다, 이우혁은. 이우혁의 신간이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근로 학생이 책을 읽고 있길래 뭔책인가 봤더니 이우혁 책이길래 관심을 좀 보였더니 빌려줘서 읽기 시작한 것이... 3권까지 가버렸다. 이런 종류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더니, 또 다르게 재밌었다. 3권 작가의 말에서 이우혁은,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재미있게 읽히기 위해 씌어졌다'고 말한다. 작가의 의도대로 그저 재미로 읽기엔 손색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내가 이 타이밍에 이걸 읽어도 됐었냔 말이다. ㅋㅋㅋ ㅜ_ ㅜ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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