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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즐거움/조금 긴 소개

전경린의 『엄마의 집』If life gives you a lemon, make lemonade!

by LoveWish 2008. 2. 27.

전경린의 소설은 처음이다. 친구가 교보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고, 전경린 팬사인회가 있던 날 내가 생각났다며 내 이름으로 싸인을 받아다 주었다. 고마운 녀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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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을 구경해봤지만, 이 책 디자인이 심상치 않다. 새롭다! 멋지다! 책껍데기가 포스터가 되고 작품이 된다.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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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껍데기를 벗기면 왼쪽과 같은 모습이고, 책 껍데기만 벗겨서 두면 오른쪽과 같다! 종이도 튼튼해서 너덜너덜 해질 일도 없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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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개만 펼치면 일단 이런 모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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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껍데기를 전부 펼쳤을 때 앞 뒷면 모습...! 처음이야 이런 책디자인>_<♡
책 디자인 리뷰가 길어졌다. ㅋㅋㅋㅋㅋ 워낙 '책 만지는 것'을 좋아하기에.. ㅜㅜ
내용 리뷰 시작.~

노란색 박스 안의 내용은 본문 인용입니다.
스포일러라고 생각 되시면 그 부분은 넘어가세요~ ^^a

이번에도 느낀거지만 조숙한 20살 여자의 시선이라는 게 내게는 불편한 것 같다. 글은 당연히 전경린이 쓴 거지만, ‘세상에, 정말 저런 생각과 표현력을 가진 20살이 있으면 어쩔 거야’하는 질투심이 생기는 거였다.

이혼한 엄마와 딸, 그리고 아빠, +아빠의 다른 딸 이야기. 읽는 동안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  떠올랐지만, 즐나집을 읽는 내내 조금 식상한 감이 있었다면(이건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의 양과 관련이 있었지만), 엄마의 집은 스토리 자체는 둘째치고, 소소한 일상과 풍경에 대한 묘사가 너무 좋았다. 작은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는거다.


나도 언젠가 운명의 물레 바늘 같은 것에 찔려 잠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현실에 대한 실감이 없이, 마치 괴로운 꿈을 계속 꾸는 잠 속인 것만 같으니까. 성벽을 감는 넝쿨들만 마구 뻗쳐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도 나를 구하기 위해, 언젠가는 칼을 뽑아들고 넝쿨에 친친 감긴 왕국으로 한발 한발 들어가야겠지. 몇 번이고 쓰러져 죽고, 또다시 발밑에 쌓인 나 자신의 해골들을 차내며 들어가겠지. 나는 나에게 도달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읽을 땐 이미, 화자에 대한 질투심도 누그러져 있었다. 화자의 K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난 그 마음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딱 스무 살의 이야기였다. 엄마와 아빠의 다른 딸 승지와 그리고 엄마의 남친을 바라보는 눈은 꽤나 객관적이고 ‘쿨’했지만, K와의 관계, 그리고 ‘사랑’이라는 화두 앞에선 영락없는 스무 살이었다. 꿈, 우울, 삶의 문제들에 있어서도 말이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었다.

 

“꿈에서 깬 기분이 어때?” 라고 묻는 딸에게 엄마는,

“진짜 자기 집에 도착한 사람처럼, 삶에 대한 모든 부정들이 걷혀. 인간다운 의식주, 생계를 위해 하는 일, 타인과의 교제, 자기 역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방바닥을 닦고 유리창을 닦는 일, 밥을 끓이는 일, 세속적 조건 속에서 살기 위한 온갖 노력들의 경건함을 알게 돼. 그게 포인트야.” 라고 말한다.

“단지 세속적인 인간으로 살기 위해 백 년의 잠을 자고 깬다고?”

“그냥 세속성과 달라. 말 그대로, 자신의 꿈이 선택한 삶 속에서 깨어 있는 세속성을 말하는 거야.”


현실 속에서 어떤 엄마와 딸이 저렇게 솔직하고 진지하게 대놓고 삶에 대해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가 싶으면서도, 저 대화가 좋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꿈이 선택한 삶 속에서 깨어 있는 세속성’이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방황하며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어느 정도의 마음에 드는 타협점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아니 종종 내가 표현하고 싶은데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횡설수설하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간결한 문장으로 만날 때면, 너무 반가워서 그것만으로도 그 소설 전체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기도 한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볼 때도 세상의 연약함에 놀라 자주 어리둥절해졌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노령화와 일인 가구의 증가 같은 기사, 떠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생각보다 너무 높은 기사, 어느 지역에선 겨우 사 년 사이에 아파트 값이 몇 억이나 올랐다는 부동산 기사나.... (중략)... 세상이 얼마나 연약하고 우발적이고 잔인하고 무책임한 것인지. 하나의 나라라는 것이, 국민의 수를 걱정해야 하고 살림을 하기 위해 국민의 연령을 고뇌해야 하는 것이다. 돈과 권력을 구하기 위해 학력과 지연의 패거리를 짓거나 줄을 서서 이리로 몰려가고 저리로 몰려다니는 그런 세상이 가진 가치란 또 얼마나 허약하고 근거 없고 변덕스러울 것인가.


세상이 아전인수의 장이며 거짓말의 바벨탑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은 성숙일까? 절망일까? 아니면 그게 바로 삶일까? 그런 때면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면서 버섯처럼 마음이 차갑게 식곤 했다. 겨우 스무 살에 말이다.


248~251부분도 참 좋다. 엄마는 아빠와의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의 자신을 알고 있다. 그런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딸은, 그런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줄 수 있는 성숙한 딸이다.


어른들이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까지도 저렇게 힘껏 받아들이는 사람들인가.... 가슴이 뻐개지도록 밀고 들어오는 진실들을 받아들이고 또, 승낙 없이 떠나려는 것들을 순순히 흘려보내려면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강이 흘러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알았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가혹한 진실마저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인 것이다.


“세월이 좀 흐르니, 나도 그렇고, 네 아빠도 그렇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산 하나처런 느껴져. 생각해봐. 산 하나의 내부가 품고 있는 그 많은 생명들과 어찌할 수 없는 인과관계와 진실을. 그게 한 인간이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인거야. 그러니, 누구도 타인을 구할 만큼 자유로울 수 없어. 제 한 존재를 버티는 일도 참 버거운 거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제는 소설을 그저 ‘이야기’로만 읽고 있지는 않구나. 조금씩 텍스트를 짚어나가는 마음의 눈도 자라고 있구나.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어와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결국 이책의 메시지는 ‘삶에 대한 긍정’이다. 내가 최근 내 삶의 화두로 삶고 있는 삶에 대한 긍정 말이다.


듣기로는 전경린이 달라진 거라고 하던데, 그 전의 소설이 어땠는지도 궁금해졌다.

“난 엄마 아빠와는 달리 이상향을 꿈꾸지 않아. 너무 어려운 사랑을 할 마음도 없고, 너무 먼 곳까지 갈 마음도 없어. 난 평범한 세속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싶거든.”


미래를 생각하면, 때론 부풀어오르는 과육 속에 박힌 애벌레처럼 시고 달콤한 세속적 소망에 사로잡히고 또 때론 내 소망의 철저한 세속성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난 시골이나 산으로 숨지도 않고 내 방에 틀어박히지도 않을 것이며, 공연히 세상 끝까지 가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이 세상의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스와힐리어도 배우고 에스파냐어도 배우고 싶지만, 굳이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에 가고 싶지는 않다. 물론 갈 일이 생긴다면, 뒷걸음치지는 않을 것이다. 열두 개의 별자리를 골고루 친구로 사귀고 싶고 남자와 여자를 사랑하고 아이도 낳아 키우고 싶다. 커다른 개를 키우며 도심의 강변 빌라에서 살고 싶고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시골집에 공작새를 풀어놓고 살아보고도 싶다.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삶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백 가지 적과 늘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 나는 예수와 부처에 대한 경외와 연민을 느끼고 타인에 대한 자비심에 동감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여기 살아 있음을 기뻐하고 싶다.


적고나니,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들로만 구성된 책 소개인 것 같다. ㅋㅋㅋ
내가 아직 비평을 할 능력이 안되지만, 이런식으로 적다보면 어느 순간 소개와 비평을 함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오빠와 여성과 남성의 이성과 감성에 대해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음 포스팅은 그 대화 내용을 정리해서 올려보고자 한다. 엄마의 집 리뷰 2탄? 까지는 아니고... ㅋㅋ

아... 그리고 작중 화자가 대학교 2학년인데, 그럼 20살이 아니라 21살일 수도 있겠다.. 하하

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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