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출간 기념 이벤트에(아마도?) 막내이모가 당첨 되서, 나의 오빠 김연수가 그 자리에 함께 갔었다. 그 때 『읽GO 듣GO 달린다』를 받아왔다. (이 책은 비매품 한정으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살 때 한동안 함께 준걸로 알고있다.) 김연수의 소소한 에세이가 무척 흥미로웠는데, 난 특히 [읽는다] 부분의 '조르바, 삶의 예술가에 대해서'라는 짧은 글에 낚였다, '잘'.
당시에 단조로운 생활에 지겨워 하고 있던 나는,
결국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고 나면 당장 책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가 세상의 모든 것을 처음인 듯 바라보고 듣고 냄새맡게 만든다. 이런 책이 어디 있을까?라는 김연수의 문장에 눈이 뒤집혀, '바로 이거야' 하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손에 잡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접하는 그리스 문학이 잘 읽히진 않아서 몇 달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조금 읽어보다가 마음에 안들면 다시 잘 안펼쳐드는 습관의 내가 끝까지 읽고싶어 한 걸 보면 정말 매력이 있긴 했다. 뒤로 갈수록 조르바라는 사람에게 점점 더 빠져들었으니까 말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나'(두목)이다. 두목은은 조르바와 생활과 생각을 이야기 한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두목과, 온 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조르바는 대조적 인물이다. 굳이 내가 어떤 두목과 조르바 중 어떤 유형의 인물인가를 생각해보면, 나는 두목쪽이다. 하지만 두목이 조르바의 삶을 진심으로 존경한 것처럼 나역시 조르바의 영향을 받고싶다.
두목은 조르바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렴.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과부가 죽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두목은 길고 긴 사색과 고뇌의 시간을 통해 딴에는 자기 위안의 한 경치에 도달했답시고 조르바에게 과부 이야기를 꺼내는데 조르바는,
"닥쳐요" 그가 구겨진 목소리로 말했다.두목과 조르바는 무척 다른 사람이었지만, 슬픔과 두려움과 열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 같은 사람이었다. 뒤로 갈수록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진짜 사내란 이런 거야….)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조르바의 매력!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그리고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춤을 춘다. 춤은 조르바가 정말 잘 추고, 두목은 나중에서야 조금 배우는데, 그들이 그리스 해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하면 나까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다. 조르바는 자주 춤의 언어로 말을 한다.(아, 노래도 잘한다!) 나도 좀 배우고 싶다. 몸으로 표현하는 것들. 난 기껏해야 바다에 가서도 '달리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데, '춤'을 추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조르바는 두목에게 춤을 가르쳐 주면서,
"브라보! 아주 잘 하시는데!" 조르바는 박자를 맞추느라고 손뼉을 치며 외쳤다. "…브라보, 젊은이! 종이와 잉크는 지옥으로나 보내버려! 상품, 이익 좋아하시네. 광산, 인부, 수도원 좋아하시네. 이것봐요, 당신이 춤을 배우고 내 말을 배우면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그리고 조르바의 춤...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팔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바다와 하늘을 등지고 날아오르자 그는 흡사 반란을 일으킨 대천사 같았다. 그는 하늘에다 대고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이 날 어쩔 수 있다는 것이오? 죽이기밖에 더하겠소? 그래요, 죽여요. 상관 않을 테니까. 나는 분풀이도 실컷 했고 하고 싶은 말도 실컷 했고 춤출 시간도 있었으니….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요!"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만난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조르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삶의 길잡이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졌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으리라. 그 까닭은 글쓰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그가 갖추었으니, 화살처럼 허공에서 힘을 포착하는 원시적인 관찰력과, 아침마다 다시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과, 영혼보다 우월한 힘을 내면에 지닌 듯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과, 결정적 순간마다 인간의 배 속보다도 더 깊고 깊은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다."
'책읽기의 즐거움 > 조금 긴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와 이창동의 <밀양> (6) | 2008.07.11 |
---|---|
오랜만에 만난 재미있는 소설, 『악기들의 도서관』 (10) | 2008.05.18 |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에서, 보르헤스를 만나다! (0) | 2008.05.07 |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 (3) | 2008.04.29 |
병원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0) | 2008.03.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