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남자
윤예영
책 읽는 남자를 사랑했다. 공원 벤치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책을 읽는 남자, 책을 읽다 가끔씩 책 속에 숨어버리던 남자, 책 속에 들어가 오렌지 껍질을 벗기며 다시 책을 읽는 남자, 가끔씩 나를 읽던 남자, 내 입술에 담뱃재를 떨어뜨리던 남자, 내 가슴에 밑줄을 긋던 남자, 내 안에 책갈피를 끼워두던 남자, 가끔씩 나를 접어버리던 남자, 그러나 이제는 먼지 쌓인 책꽂이 한켠에 꽂힌 남자. 헌책방에 치워버릴 수도 없는 남자.
그 남자는 책을 읽었다.
그래서 나는 책이 되고싶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책이 되었다.
하하. 이제 그만 치워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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