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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즐거움/오려두는 글

『위트 상식사전』에서 찾은 나의 모습

by LoveWish 2008. 5. 24.
황당할 정도로 공감한다.
몇 가지 상황과 행동만 바꾸면 딱 내 이야기다.
뭐하는 꼬라지람. ㅜ_ㅜa

하긴 뒹굴거리다가 구석에 꽂혀 있는 쳐다도 안보던 『위트 상식사전』을 발견하고,
이 이야기를 읽게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
역시 어떤 책이라도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면 좋은 점이 많다. ㅎㅎ

어쨌든 정신차리자....


<나이듦과 집중력>

  나는 세차를 하기로 계획한다. 차를 빼러 차고로 가려다 거실 책상 위에 놓인 우편물을 발견한다. 세차를 하기 전에 우선 우편물부터 살펴보기로 결심한다. 자동차 열쇠는 책상 위에 놓아두고, 우편물 속에 끼어 있는 광고전단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려는데, 쓰레기통이 꽉 차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각종 세금고지서와 영수증은 책상 위에 놓아두고, 우선 쓰레기통을 비우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쓰레기를 비우려면 어차피 우편함을 지나쳐 가야 하기 때문에, 우선 세금고지서를 처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표책을 꺼냈는데 가계수표가 한 장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새 수표책은 서재에 있는 책상에 보관하고 있다. 그래서 서재로 향했더니 마시다 만 생수병이 보인다. 수표책을 찾긴 찾아야겠지만, 실수로 쓰러뜨리는 일이 없도록 우선 생수병부터 치워야 한다. 생수병에 남아 있는 물이 미지근한 것을 보고, 냉장고에 넣어두기로 결심한다.

  부엌으로 갔더니, 꽃병에 물이 없는 것이 보인다. 일단 생수병을 창가에 세워두려는데, 거기에서 아침 내내 찾이 못해 애썼던 돋보기 안경을 발견한다. 안경을 책상에 가져다 놓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전에 우선 꽃병에 물부터 채우기로 결정한다. 안경을 다시 창턱에 놓고 꽃병에 물을 채웠을 때, 불현듯 TV리모컨이 눈에 띈다. TV리모컨이란 부엌 창가 같은 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그래서 나는 리모컨을 거실의 원래 자리에 가져다놓기로 결심하지만, 화분에 물부터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분에 얼마 물을 주지도 않았는데, 물이 그만 바닥으로 튀어 걸레를 가져온다. 그러고나서 거실로 통하는 복도로 나와 원래 계획이 무엇이엇는지 기억해 내려 애쓴다.

  결국 하루가 다 지나도록 자동차는 씻지 못했고, 세금고지서도 처리하지 못했다. 부엌 창가에는 미지근한 물이 담긴 생수병이 그대로 세워져 있고, 꽃은 아직 말라 있다. 거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수표가 한 장밖에 안 남은 수표책이 있고, TV리모컨은 여전히 부엌에 있다. 돋보기 안경을 서재 책상 위에 가져도 놓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든다. 자동차 키는 어디다 두었는지 도통 기억해 낼 수가 없다.

<과제물에 대처하는 대학생의 일반적인 자세>

1. 컴퓨터 앞에서 자세를 바로 하고 앉는다.
2. 우선 이메일 온 게 없는지 확인한다.
3. 과제가 무엇인지 세심하게 읽어보고 이해하도록 노력한다.
4. 산책 겸 자동판매기나 상점이 있는 곳까지 가서 집중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초콜릿 한 통을 산다.
5. 집에 돌아오면 그동안 이메일 온 게 없는지 다시 확인한다.
6.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선 찻집에 가서 코코아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킬 의향이 없는지 물어본다.
7. 찻집에서 돌아오면 자세는 바로 하되 긴장을 풀고 책상 앞에 앉는다. 방이 어지러울 경우는 정리정돈을 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8. 과제르 제대로 이해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9. 이메일 온 게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10. 욕실에 있는 거울을 보고 치아 사이에 이물질이 끼어 있지 않는지 살펴본다.
11. 이메일 온 게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12. 친구 한 명과 함께 휴가계획에 관한 채팅을 한다.
13. 이메일을 확인한다.
14.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 과제를 시작했는지 물어본다. 그러고나서 학교 선생, 세미나, 대학 그리고 전세계에 대해 서로 험담을 늘어놓는다.
15. 가게에 가서 껌을 사온다. 모르긴 몰라도 집에는 껌이 다 떨어졌을 것이다.
16. 껌 말고도 잡지를 사다가 읽을 수도 있다.
17. 이메일을 확인한다.
18. 중요한 방송을 놓치는 일이 없게 TV 프로그램 편성표를 확인한다.
19. 인터넷 고스톱을 한 판 친다. 한 판으로 그칠지는 절대 장담할 수 없다.
20. 업데이트된 인터넷 유머가 있는지 확인한다.
21. 손을 씻는다.
22.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과제를 얼마나 했는지 물어본다. 친구 역시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3.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의 사진첩을 보며 누가 누구인지 물어본다.
24.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25. 업데이트된 인터넷 유머가 있는지 확인한다.
26. 이메일을 확인한다.
27. 이제 컴퓨터를 재부팅한다. 컴퓨터를 켜놓았던 시간을 감안할 때, 이쯤 되면 윈도우 프로그램이 다운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28. 다시 한 번 그 빌어먹을 과제물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29. 의자를 창가에 가져다놓고 해가 뜨는 광경을 지켜본다.
30. 바닥에 누워 길게 한숨을 쉬어본다.
31. 별을 가겨하고, 아무거나 손에 자히는 대로 부순다.
32. 이메일을 확인한다.
33. 몇 가지 야한 말을 중얼거려 본다.
34. 새벽 5시가 넘으면 패닉 상태에 빠져 과제물을 풀기 시작하고, 6시가 되어 끝마칠 때까지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
35. 이 바보 같은 과제물을 작성하느라 한숨도 못 자고 고박 밤을 새워야 했다고 가는 데마다 불평을 늘어노는다.
36. 강사에게 과제물을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잔다.

위트 상식사전 상세보기
롤프 브레드니히 지음 | 보누스 펴냄
독일의 문화인류학자 롤프 브레드니히 교수가 수집한 고품격 위트 모음집. 저자는 지난 5년간 전세계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수십만 개의 위트를 수집해 그 중 고품격 위트만을 가려 뽑았다. 국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농담이 아닌 국제적인 위트 감각을 익힐 수 있으며 특히 서구인들의 세계와 일상생활,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품행제로》 등의 영화 광고디자인을



두 이야기에 공감하시는 분 더 있나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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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옆도서관] 주인이 그리던 아해들. 혼란스러운 내모습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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