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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즐거움/오려두는 글

[시] 동사무소에 가자 - 이장욱

by LoveWish 2008. 10. 26.


동사무소에 가자

이장욱

동사무소에 가자
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
외로울 때는
동사무소에 가자
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
어제 죽은 사람들이 아직
떠나지 못한 곳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前生이 궁금해지고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공중부양에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 죽은 생선처럼 침울해져서
짧은 질문을 던지지
동사무소란
무엇인가

동사무소는 그 질문이 없는 곳
그 밖의 모든 것이 있는 곳
우리의 일생이 있는 곳
그러므로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동사무소에 가자

두부처럼 조용한
오후의 공터라든가
그 공터에서 혼자 노는 바람의 방향을
자꾸 생각하게 될 때

어제의 경험을 신뢰할 수 없거나
혼자 잠들고 싶지 않을 때
왼발을 든 채
궁금한 표정으로
우리는 동사무소에 가자

동사무소는 간결해
시작과 끝이 무한해
동사무소를 나오면서 우리는
외로운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왼손을 들고
왼발을 들고

출처 :『문학사상』, 2006  12월 호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동사무소에 갔지.
조용한 곳, 정말 조용한 곳이었어.
무한한 시작이 내앞에 펼쳐질 예정이었지만, 무척 간결했지.
특별한 질문은 없었지만, 동네 사람들의 모든 시작과 끝이 그 안에 있었겠지.

  

부암동사무소 근처를 돌아다니는 동네 개들


요즘 동사무소는 내게, 마을버스 내리는 곳! 산책하러 가는 길, 커피마시러 가는 길의 기점.
언젠가 동사무소에 들러 이 동네를 떠날 준비도 하게되겠지.




외로울 때는
동사무소에 가자
...

두부처럼 조용한
오후의 공터라든가
그 공터에서 혼자 노는 바람의 방향을
자꾸 생각하게 될 때

어제의 경험을 신뢰할 수 없거나
혼자 잠들고 싶지 않을 때
왼발을 든 채
궁금한 표정으로
우리는 동사무소에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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