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에 가자
이장욱
동사무소에 가자
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
외로울 때는
동사무소에 가자
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
어제 죽은 사람들이 아직
떠나지 못한 곳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前生이 궁금해지고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공중부양에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 죽은 생선처럼 침울해져서
짧은 질문을 던지지
동사무소란
무엇인가
동사무소는 그 질문이 없는 곳
그 밖의 모든 것이 있는 곳
우리의 일생이 있는 곳
그러므로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동사무소에 가자
두부처럼 조용한
오후의 공터라든가
그 공터에서 혼자 노는 바람의 방향을
자꾸 생각하게 될 때
어제의 경험을 신뢰할 수 없거나
혼자 잠들고 싶지 않을 때
왼발을 든 채
궁금한 표정으로
우리는 동사무소에 가자
동사무소는 간결해
시작과 끝이 무한해
동사무소를 나오면서 우리는
외로운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왼손을 들고
왼발을 들고
출처 :『문학사상』, 2006 12월 호
부암동사무소 근처를 돌아다니는 동네 개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동사무소에 갔지.
조용한 곳, 정말 조용한 곳이었어.
무한한 시작이 내앞에 펼쳐질 예정이었지만, 무척 간결했지.
특별한 질문은 없었지만, 동네 사람들의 모든 시작과 끝이 그 안에 있었겠지.
요즘 동사무소는 내게, 마을버스 내리는 곳! 산책하러 가는 길, 커피마시러 가는 길의 기점.
언젠가 동사무소에 들러 이 동네를 떠날 준비도 하게되겠지.
외로울 때는
동사무소에 가자
...
두부처럼 조용한
오후의 공터라든가
그 공터에서 혼자 노는 바람의 방향을
자꾸 생각하게 될 때
어제의 경험을 신뢰할 수 없거나
혼자 잠들고 싶지 않을 때
왼발을 든 채
궁금한 표정으로
우리는 동사무소에 가자
...
'글쓰기의 즐거움 > 오려두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14) | 2008.12.03 |
---|---|
[문장] 생각의 오류 (2) | 2008.12.03 |
[시] 인생을 다시 산다면 (2) | 2008.10.10 |
『위트 상식사전』에서 찾은 나의 모습 (6) | 2008.05.24 |
[시] 책 읽는 남자 (4) | 2008.05.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