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성질이 나쁜, 항상 불만에 찬 아이였다. 맘에 차지 않으면 먹지도 입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고마워하기는커녕 불평을 해대는 그런 아이였다. 어디서든 만족을 찾지 못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성격이 확 바뀌었다. 조용해졌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책만 읽었다. 인생살이를 포기한 듯이 보였다. 상상의 세계로 얼이 다 날아간 듯이 보였다. 그것이 열두어 살 적 일이었다.
사춘기를 지나 질풍노도의 청춘을 넘기면서 감정처리를 완전히 책에 의존했다. 자기가 자신을 가누지 못한다고 느낄 땐 무조건 책을 펴고 그속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맨 첫 장부터 읽는 것도 아니었다. 잡히는 대로 책을 집고는 아무 데나 펴서 읽기 시작했다. 나의 거처에는 하도 읽어서 낱장들이 너덜너덜해지고 두꺼운 겉껍질조차 날아가 버린 책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원인도 모르는 슬픔에 잠겨 황량한 들판에 멍청히 서 있는 청년 토니오 크뢰거, 나는 그를 통해 황야의 삭풍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의 원인 모르는 슬픔이 그의 슬픔을 구경하는 동안 잦아든다. 생울타리 주변을 웅얼거리며 맴돌고 있는 벤지를 음향과 분노 속에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불분명한 울분에 잠겨 있는 나의 의식은 벤지 수준의 미숙아로 내려가서 생울타리 주변을 빙빙 돌고 있다. 얼마간 그렇게 헤매고 나면 내 머릿속은 단순하게 정리되어 있다. 내용도 없는 말들을 열에 들떠 쉬지않고 지껄여 대는 잭 캐루악의 소설 속 젊은이들. 그들은 움직이는 차안에서 하이웨이를 달리면서 집단으로 청춘을 삭이고 있었다. 나는 도서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서, 그들을 읽어대면서, 혼자서 청춘을 삭였다.
뜨거움이 부족한 나와 마주하면,
김점선을 찾게된다.
그녀를 찾아 함께 타오른다.
정말 뜨겁기로는 '책이 나를 품어주었다' 바로 앞에 있는 이야기, '생각하지 않는다'(p.203)가 정말 김점선 스럽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한 방황적인 독서를 끝내고 지식을 쌓기 위한 독서를 하기 시작했을 때, 그냥 읽지만 않고 노트에 정리해가며 깊미 있는 독서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한 후,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그림을 그렸고, 하숙집 화장실은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을 정도로 눈뜨면 학교로 달려가서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생각하지 않는다'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결혼을 하고 얼음물에 아기 기저귀를 빨고, 콩나물을 사면서 더 달라고 부들부들 떨 만큼 가난하게 살고, 그러고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정신력이 있어야 화가가 된다고 김상유 선생님이 말했다. '그래? 그럼 결혼하지 뭐! 아주 가난한 청년하고? 그러지 뭐!'라고 하고, 한 달 만에 결혼을 해버린 사람이 김점선이다.
김점선의 반 만큼만 열정에 사로잡힐 수 있다면...
무엇이든 '되려면' 최소한 자신이 자신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꿈꾸는 사서가 되기 위해, 읽고 사유하고 쓰고 행동하는 행위들을 미친듯이 할 수 있는가...
당장 코앞의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그냥 여기까지인 인간일 것인가, 아니면 무엇이든 되고야 말 것인가.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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