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예쁜 책이 한 권 내게로 왔다. 책 날개를 펼쳐보고 멈칫, 놀랐다. 87년생이라니. 86년생 작가를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 3년 전에 82년생 정한아의 '달의 바다'를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읽다 보니 87년생의 감수성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 대 초반의 감수성이 떠오른다.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젠 나도 그 시절을 지나오긴 한 것 같다. 만약 내가 그 때 방황할 수 있는 만큼 방황하지 않고, 고민할 수 있는 만큼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이야기 하나에도 쉽게 다시 흔들렸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이 책이 그만큼 이십대 초반의 흔들리는 감수성을 잘 표현해줬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덕분에 그 시절 특유의 어떤 느낌과 분위기, 그리고 사건들이 떠올랐다. 이런 걸 추억한다고 하는가. 적당히 가라앉아 이런저런 기억들을 추억하다가 홀가분한 마음이 되려 애썼다. 기분 좋은 시간이다. 책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교감시키는 시간.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가 더 빠르게 전개되었다.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마무리도 좋았다. 초반에 '나는 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마지막에 '나는, 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느껴보시라, 묘한 어감 차이를.
덧붙이면, 책 뒤의 '해설'을 읽고 놀랐다. 문학평론가는 괜히 문학평론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위의 나처럼 자신과 관련된 단순한 느낌의 나열 또는 생각의 변화 등만 기록할 것이 아니라, 소설이 의미하는 바와 문학적 장치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하긴, 그러면 내가 문헌정보학 전공하고 있진 않을 테지. 읽고나서 적당히 생각하고 변화하는 줄 아는 독자로 만족한다. 그 깊이는 읽다 보면 더해질 것이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책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내일이면 다시 전공 관련 책이나 논문이 아닌 다른 무언갈 읽으면 혼날 것만 같은 기분이 되고 말 테니까, 이 시간이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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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맥주 마시고 싶다!
담배 한 개비의 시간 문진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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