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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즐거움/오려두는 글23

[시] 동사무소에 가자 - 이장욱 동사무소에 가자 이장욱 동사무소에 가자 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 외로울 때는 동사무소에 가자 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 어제 죽은 사람들이 아직 떠나지 못한 곳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前生이 궁금해지고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공중부양에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 죽은 생선처럼 침울해져서 짧은 질문을 던지지 동사무소란 무엇인가 동사무소는 그 질문이 없는 곳 그 밖의 모든 것이 있는 곳 우리의 일생이 있는 곳 그러므로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동사무소에 가자 두부처럼 조용한 오후의 공터라든가 그 공터에서 혼자 노는 바람의 방향을 자꾸 생각하게 될 때 어제의 경험을 신뢰할 수 없거나 혼자 잠들고 싶지 않을 때 왼발을 든 채 궁금한 표정으로 우리는 동사무소에 가자 동사무소는 간결해 시작과 끝이 무한해 동사무소를 나오면.. 2008. 10. 26.
[시]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딘 스테어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분별있게 살아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의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 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 2008. 10. 10.
『위트 상식사전』에서 찾은 나의 모습 황당할 정도로 공감한다. 몇 가지 상황과 행동만 바꾸면 딱 내 이야기다. 뭐하는 꼬라지람. ㅜ_ㅜa 하긴 뒹굴거리다가 구석에 꽂혀 있는 쳐다도 안보던 『위트 상식사전』을 발견하고, 이 이야기를 읽게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 역시 어떤 책이라도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면 좋은 점이 많다. ㅎㅎ 어쨌든 정신차리자.... 나는 세차를 하기로 계획한다. 차를 빼러 차고로 가려다 거실 책상 위에 놓인 우편물을 발견한다. 세차를 하기 전에 우선 우편물부터 살펴보기로 결심한다. 자동차 열쇠는 책상 위에 놓아두고, 우편물 속에 끼어 있는 광고전단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려는데, 쓰레기통이 꽉 차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각종 세금고지서와 영수증은 책상 위에 놓아두고, 우선 쓰레기통을 비우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쓰.. 2008. 5. 24.
[시] 책 읽는 남자 책 읽는 남자 윤예영 책 읽는 남자를 사랑했다. 공원 벤치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책을 읽는 남자, 책을 읽다 가끔씩 책 속에 숨어버리던 남자, 책 속에 들어가 오렌지 껍질을 벗기며 다시 책을 읽는 남자, 가끔씩 나를 읽던 남자, 내 입술에 담뱃재를 떨어뜨리던 남자, 내 가슴에 밑줄을 긋던 남자, 내 안에 책갈피를 끼워두던 남자, 가끔씩 나를 접어버리던 남자, 그러나 이제는 먼지 쌓인 책꽂이 한켠에 꽂힌 남자. 헌책방에 치워버릴 수도 없는 남자. 그 남자는 책을 읽었다. 그래서 나는 책이 되고싶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책이 되었다. 하하. 이제 그만 치워버릴까? 2008. 5. 16.